| 소분류 | 의학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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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치 | 중의경전과 임상의 융회관통融會貫 |
| 해설 | 李今庸리진융 중의경전과 임상의 융회관통融會貫通 약력 수상경력 1925년 후베이성湖北省 짜오양현棗陽縣 출생 1947년 진료활동 시작 1957년 후베이중의학원 교수(내경, 난경, 금궤요략 강의) 1979년 중화중의약학회 이사 1980년 중화중의약학회 중의기초이론연구위원회 위원 1986년 중국기공과학연구회 이사 1986년 중화중의약학회 상무이사 1991년 국무원 “걸출한 공헌의 명로중의” 1991년 국무원 “전국 500대 명로중의약전문가 학술경험 계승지도교수” 1999년 중화중의약학회 “국의모범” 2003년 중화중의약학회 성취상 2007년 국가중의약관리국 “중의임상인재교육사업 우수 지도교수” 2011년 “후베이 중의대사” 2014년 “제2기 국의대사” 대표저서 및 논문 | 저서 | 1963년 <금궤요략강의金?要略講義> 1963년 <금궤요략강의金?要略講義>, 상해과기출판사 1973년 <중의학기초中醫學基礎>, <중국의학사中國醫學史> 공동집필 1982년 <내경선편內經選編> 1987년 <금궤요략강해金?要略講解>, 광명일보출판사 1988년 <신편황제내경강목新編黃帝內經綱目>, 상해과학기술출판사 리진융 李今庸 생년월일 1925년 9월 출생지 후베이성湖北省 짜오양현棗陽縣 민족 한족 전공 내경, 난경, 상한론 소속 후베이중의약대학 교수 1998년 <리진융경험집요李今庸經驗輯要>, 중국의약과학기술출판사 2002년 <중의임상가 리진융中醫臨床家李今庸>, 중국중의약출판사 2003년 <설경여화舌耕餘話>, 중국중의약출판사 2008년 <리진융금궤요략강고李今庸金?要略講稿>, 인민위생출판사 | 논문 | “금궤요략金궤要略‘소갈소변리림병맥증병치 제13편’에 대한 의견”, 강서중의약, 1960 “<내경內經>으로 살펴본 진국秦國의 법가노선이 고대의학발전에 끼친 촉진작용”, 신의약통신, 1975 “변증辨證과 변병辨病”, 신중의1976 “오행학설의 형성과 변천 및 조국의학에서의 가치”, 신의약통신, 1977 “조국의학 육음학설의 형성”, 신의약통신, 1979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완성 년도와 완성 지역에 대한 고찰”, 하남중의, 1981 “임상실전을 지도하는 담부이론膽腑理論의 작용”, 중국농촌의학中國農村醫學, 1981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영위이론營衛理論”, 중의약연구, 1991 “‘인체에서 혈자리’의 중요의의”, 중국의약학보, 1992 “해천논치咳喘論治”, 광명중의, 1995 “중국 고대 ‘뇌腦’에 대한 인식”, 호북중의학원학보, 1999 과학기술적 성과 | 업적요약 | 중의대 학부생 교육과정에 처음으로 <금궤요략>과목을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교재를 집필함 교감학校勘學, 훈고학訓?學, 고문자학古文字學, 고고학考古學 등을 이용해 중의약학 고의적古醫籍 24부를 연구하여, 소문47개, 영추20개, 상한론8 개, 금궤요략24개, 난경147개 부분에 대한 자신의 해석 발표 내경연구의 권위자로서 중의기초이론을 정리하고, 논란이 많은 여러 문제를 해설하였으며, 육음六淫은 실제로는 오음五淫(寒, 暑, 燥, 濕, 風)이고, 내경의 “운기칠편運氣七篇”은 동한東漢시기 이후에 서술되었다고 주장함 140여 병종에 대한 증형분류 감한양음방甘寒養陰方, 동과피탕, 관완이진탕款?二陳湯 등 경험방 창방 칠정七情에 의한 발병의 기본규칙, 정·신·기·혈·진액의 상호관계, 어혈형성의 원인과 변증시치의 원칙, 장부 승강升降이론과 임상병증, 담부膽腑이론의 임상의의,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의 임상응용 등 다양한 연구진행 생애 Biography 리진융李今庸선생은 1925년 후베이성湖北省 짜오양현棗陽 縣의 중의세가에서 태어났다. 1939년부터 1949년까지 부친으로부터 중의를 사사받 았으며, 1950년부터 진료를 시작하였다. 1957년 후베이湖北중의학원 교수로 임용되어 내경, 난경, 금궤요략 등을 강의하였으며, 재직 시에 <금궤요략강의金?要略講 義>, <중의학기초中醫學基礎>, <중국의학사中國醫學史>, <내경선편內經選編> 등의 교재를 집필하였다. 중화중의약학회 이사, 중화중의약학회 중의기초이론연구위 원회 위원, 중국기공과학연구회 이사, 중화중의약학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리 선생은 중의대 학부생 교육과정에 처음으로 <금궤요략>과목을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그가 집필한 교재는 전국 중의대 교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중의 계에서는 처음으로 교감학校勘學, 훈고학訓?學, 음운학音韻學, 고문자학古文 字學, 방언학方言學, 역사학曆史學, 고고학考古學과 중의기초이론 및 임상의료 실천경험을 결합하여 고전이론을 연구하여, 소문47개, 영추20개, 상한론8개, 금궤 요략24개, 난경147개 부분에 대해 자신의 주석을 발표하였다. 리 선생은 황제내경 연구의 권위자로서 중의기초이론을 정리하고, 논란이 많은 여러 문제를 해설하였 으며, 그 결과를 교재에 반영하였다. 그는 육음六淫은 실제로는 오음五淫(한寒, 서暑, 조燥, 습濕, 풍風)이며, 내경의 “운기칠편運氣七篇”은 동한東漢시기 이후에 서술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140여종 병종의 증형을 분류하였으며, 이 밖에 칠정七情에 의한 발병의 기본규칙, 정·신·기·혈·진액의 상호관계, 어혈형성의 원인과 변증시치 원칙, 장부 승강升降이론과 임상병증, 담부膽腑이론의 임상의의,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의 임상응용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감한양 음방甘寒養陰方, 동과피탕, 관완이진탕款?二陳湯 등의 경험방을 창방하였다. 선생은 300여 편의 학술논문과 <금궤요략강의金?要略講義>, <금궤요략강해金 ?要略講解>, <신편황제내경강목新編黃帝內經綱目>, <리진융경험집요李今庸 經驗輯要>, <중의임상가 리진융中醫臨床家李今庸>, <설경여화舌耕餘話>, <독 의심득讀醫心得>, <중의학변증법간론中醫學辯證法簡論>, <독고의서수필讀古 醫書隨筆>, <호북의학사고湖北醫學史稿>, <기치외용방奇治外用方>, <고의서연 구古醫書?究> 등을 저술하였다. 학술사상과 임상사로 (思路) 1991년 국무원으로부터 “걸출한 공헌의 명로중의”, “전국 500인 명로중의약전문가 학술경험 계승지도교사”, 1999년 중화중의약학회 “국의모범”, 2007년 국가중의 약관리국 “중의임상인재교육사업 우수지도교수”, 2011년 “후베이湖北 중의대사” 로 선정되었다. 2003년 “중화중의약학회 성취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제2기 “국의대사”로 선정되었다. 1. 중의약 고전의적古典醫籍 연구 리 선생은 중의계에서는 처음으로 교감학校勘學, 훈고학訓 ?學, 음운학音韻學, 고문자학古文字學, 방언학方言學, 역사학曆史學, 고고 학考古學과 중의기초이론 및 임상 의료실천 경험을 결합하여 중의약학 고의적古 醫籍과 중의경전이론을 연구하였다. 그는 소문47개, 영추20개, 상한론8개, 금궤 요략24개, 난경147개 부분에 대해 자신의 주석을 발표하였는데, 아래에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1) 내경 <소문素問·옥기진장론玉機?藏論>의 “(春脈)太過則令人善忘, 忽忽眩冒 而?疾”구절에서 “令人善忘”의 “忘”자에 대한 주석을 보면, 왕빙王?, 마시馬 蒔, 장개빈張介賓, 오곤吳昆, 이념아李念我, 장기張琦, 요지암姚止庵 등은 모두 “怒”자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忘”을 “흐리멍텅하다”고 해석하였으며 그근거로 <설문說文>에는 “忽, 忘也”라 했고, <군경음변群經音辨>은 “意昏曰忘” 라 했으며, <광아廣雅·석고釋?>는 “忽慌, 猶忽忘耳”라 하였다. 홀황忽慌은 현대 중국어의 “황홀恍惚”이라는 뜻으로 의식이 혼몽昏蒙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을 들었다. <소문素問·탕액성초론湯液醒醋論>의 “平治於權衡, 去宛陳?....開鬼門, 潔淨 府”구절의 “去宛陳?”에 대해 왕빙王?은 “去宛陳?, 謂去積久之水物猶如草 莖之不可久留於身中也”라 하였고, 단파원견丹波元堅은 “按<계봉보제방?峰普 濟方>引出和甫曰: 去宛陳?, 謂滌腸胃中腐敗也”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는 다른 구절이 탈락되어 이 구절에 끼워진 것이며, “去宛陳”의 의미는 약물에 의한 공수법攻水法이 아니라, 양상선楊上善의 <태소太素·지탕약知湯藥>에 서의 해석처럼 침자針刺에 의한 낙맥絡脈의 방혈放血치료라 주장하였다. <소문素問·조경론調經論>의 “寒濕之中人也, 皮膚不收, 肌肉堅緊...”구절에서 “皮膚不收”에 대해 왕곤吳昆은 “不收者, 肌膚虛浮不收斂也”라 하였고, 장개 빈張介賓은 “凡寒濕中人, 必傷衛氣, 故皮膚不收而爲縱緩”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문장의 “不”자는 “丕”의 통용자로서 “丕”은 의미가 없는 어조사이므 로, “皮膚不收”은 “皮膚收”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상한론 <상한론傷寒論>제46조 “太陽病, 脈浮緊, 無汗, 發熱, 身疼痛, 八九日不解, 表證仍在, 此當發其汗. 服藥已微除, 其人發煩, 目瞑, 劇者必?, ?乃解. 所以 然者, 陽氣重故也, 麻黃湯主之”에서 “目瞑”이 “目合”이라는 기존의 해석과는 다르게, 선생은 “目視昏暗” 또는 “目弦”으로 해석하였다. 3) 금궤요략 <혈비허로병맥증병치제6血?虛勞病脈證?治第六>의 “脈弦而大, 弦則爲 減, 大則爲?, 減則爲寒, ?則爲虛, 虛寒相搏, 此名爲革”조문에서 “減”자는 일반적으로 “減少”로 해석한다. 그러나 선생은 이 구절의 “減”자는 “緊”의 차자借 字로서 “緊”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였다. <복만한산숙식병맥증치제10腹滿寒疝宿食病脈證治第十>의 “趺陽脈微弦, 法當 腹滿. 不滿者, 必便難, 兩?疼痛, 此虛寒從下上也, 當以溫藥服之” 조문에서 “兩 ?疼痛”은 보통 “兩脅疼痛”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자를 “側胸部”로 해석해서 “?脅”부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은 “?”이며 “(발 뿐만 아니라) 전체 하지下肢”라고 해석하여 “兩?疼痛”은 “양측하지의 동통”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 중 하나로 선생은 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의서의 “去穀食氣” 를 들었다. 여기서 “去”자는 본래 “?”자로 “?”에서 “?”가 생략된 것이다. 선생은 “?”자 또한 “?”에서 “?”가 생략된 것으로 보았다. <오장풍한적취병맥증병치제11五臟風寒積聚病脈證?治第十一>의 “陰氣衰者爲 癲, 陽氣衰者爲狂” 조문의 “陰氣衰者爲癲, 陽氣衰者爲狂”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衰”자를 “衰弱”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선생은 이를 “중첩重疊”으로 해석하였다. <설문說文·의부衣部>에서 “衰, 草雨衣”라고 하였듯이 “衰”는 풀을 여러 겹 기워서 만든 우의를 뜻하며, “중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중첩으로 해석해야 <난경難經·20난二十難>의 “重陽者狂, 重陰者癲”과 의미가 상통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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